본문 바로가기

막강한 뉴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673회,라듐 마쿠투 쇼팽과 리스트 백설공주 외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의문의 죽음

1924년 미국 뉴저지 주 1917년 설립된 시계 공장에서 의문의 사망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70명 중 11명이 사망하였는데, 사망 전 증상이 비슷하였다.

 

급격한 체중감소, 관절통증, 치아 빠지고 혹이나 턱이 썩어 들어갔다.

그러다 결국 입안에서 출혈이 나고 호흡곤란으로 사망하게 되었다.

사인은 궤양성 구내염으로 밝혀졌다.

 

골프선수이자 백만장자였던 에번 바이어스

 

그러다가 1932년 에번 바이어스라는 유명인이 동일한 증상으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놀랍게도 에번 바이어스의 사인은 강장제 라디소어 때문이었다.

라디소어의 주성분은 라듐이었다.

 

 

*라듐(Ra)-고위험 방사성 물질로 인체에 축적될 시 빈혈,출혈,피부 괴사,각종 암을 일으킴

 

당시에는 신비의 물질로 여겨지던 라듐이었다.

1898년 퀴리 부부에 의해 발견, 종양 치료에 효과를 보여 기적의 물질로 떠오름.

라듐 생수, 라듐 화장품, 라듐 내복, 라듐 치약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라듐=만병통치약'이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에번 바이어스 뿐만 아니라 시계공장의 여종업원들의 사인 또한 라듐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진게 된다.

야광물지로 사용되던 라듐+아연화합물을 바른 붓을 입에 침을 묻혀 이 행동을 반복하면서 라듐에 중독으로 사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연방정부는 라듐의 위험성을 인정하고 물품의 생산 및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

 

-쇼팽을 위하여

'라 캄파넬라', '헝가리 환상곡', '파우스트 교향곡'과 같은 곡으로 유명한 헝가리 출신 프란츠 리스트와 '야상곡', '빗방울전주곡','즉흥환상곡'으로 유명한 폴란드 출신 프레데리크 쇼팽의 이야기다.

 

프란츠 리스트

 

'피아노의 신'이라 불린 리스트는 우연한 기회에 '피아노의 시인' 쇼팽을 알게 되었다.

두사람은 파가니니의 영향을 받아 음악을 시작하게 되는 등 공통점이 많았는데, 당시 리스트는 핸섬한 외모에 대중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유명한 피아니스트였으나 쇼팽은 외모도 뛰어나지 못했고, 소심한 성격이었고, 거의 무명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한다.

 

그러나 리스트는 자신이 인정한 쇼팽 피아노 선율의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노력했으나 대중들은 쇼팽을 알아주지 못했다.

그러다가 리스트는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된다.

 

프레데리크 쇼팽

 

편견 없이 쇼팽의 연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조명을 끄고 연주를 하는 것이었는데, 쇼팽을 위해서 자신의 독주회에서 자신 대신 쇼팽이 대신 연주하도록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이후로 사람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한 쇼팽은 무명 피아니스트에서 벗어났다 한다.

31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쇼팽 음악의 아름다움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리스트의 우정 때문이었다.

 

-죽음의 악령

2007년 10월 12일 뉴질랜드 와이누이오마타

자넷 모세스라는 여인이 사망을 하게 된다.

공식적 사인은 질식사(기도 폐색에 의한 익사)!

 

 

 

그런데 살인사건에 피의자가 외삼촌과 이모를 비롯한 9명이었다.

이들은 죽음의 저주가 서린 사자상 때문에 자넷이 사망했다면서 무죄를 주장했다.

 

술집 앞에 버려진 사자상을 주워 집에 가져간 이후 자넷은 피로감에 시달렸고, 어느날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이후 시름시름 앓기 시작, 날이 갈수록 이상증세를 보였다.





 

병원을 찾아갔으나 정확한 원인을 찾기 힘들었고, 심령술사까지 찾아가게 되었다. 

심령술사는 자넷의 이상증세의 원인이 사자상의 악령 때문이라고 말했다.

 

외삼촌과 이모들은 고민 끝에 마쿠투를 행하기로 한다.

 

 

마쿠투란?

마오리족들이 물을 뿌리며 마귀를 쫓거나 주술을 외우며 신에게 영험한 힘을 비는 전통의식

의식 중 사망하는 사건이 많아 1907년 법으로 금지

금지된 뒤로도 뉴질랜드 일부 지역에서 암암리에 행해짐.

 

자넷이 사자상의 악령 때문에 사망했다면서 무죄를 주장했으나

법원은 9명 중 퇴마의식을 주도한 5명에게 살인 유죄 판결을 내린다.

이 이야기는 뉴질랜드의 영화감독 데이비드 스터부스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동화 백설공주의 진실

그림형제의 동화 '백설공주'는 16세기에 실존했던 인물의 이야기라는 설이 있다.

독일 역사학자 에크하르트 샌더에 따르면 1994년 뜻밖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백설공주의 실제모델이 1549년 독일의 백작 필리프 4세의 딸 마르가레테라는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였다는 것이다.

 

마르가레테 폰 발데크(margarete von waldeck)

 

어릴 적에 병으로 일찍 사망한 친어머니를 대신해서 마르가레테의 새 어머니가 들어왔는데, 마르가레테와 10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고 마르가레테의 아름다움을 질투하여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한다.

 

펠리페2세

 

급기야 새 어머니의 살해 계획을 알게 되어 도망을 치게 되었고, 광산에서 일하던 아이들을 만나 도움을 받게 된다.

당시 광산은 체구가 작은 어린이들을 고용하여 왜소한 체격으로 인해 난쟁이로 불렸는데, 이후 마르가레테는 벨기에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태자 펠리페 2세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마르가레테에게 반한 펠리페 2세는 마르가레테에게 프로포즈를 하게 된다.

 

카를 5세

 

펠리페 2세의 아버지 카를 5세는 이 소식에 경악을 하게 된다.

왕가의 결혼은 영토갈등을 해결하거나 동맹을 맺기 위한 정치적 사안이어서 잉글랜드 여왕 메리1세와 결혼하길 바랐던 카를 5세는 마르가레테의 음식에 독을 탔고 21살의 나이에 목숨을 잃고 만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글이 '백설공주' 이야기라는 것이다.

 

백설공주(Snow White)

 

또다른 설은 일본 작가 키류 미사오의 백설공주가 악녀였다는 설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마르가레테는 새어머니가 들어오자 이를 질투한다.

마르가레테는 독을 바른 사과를 새어머니에게 주어 새어머니는 숨을 거두고 만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마르가레테를 집에서 쫓아낸다.

 

집에서 쫓겨난 마르가레테는 벨기에 브뤼셀에 가게 되어 펠리페 2세를 보게 된다.

마르가레테는 그를 유혹해 왕비가 되려고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거짓말로 유혹하는데 성공하였으나 카를 5세에게 살해 당했다 한다.

원래 백설공주의 이야기는 '선한 일에는 선한 결과가 나쁜 일에는 나쁜 결과가 뒤따른다'는 인과응보의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주장한다. 

 

그러나 백설공주의 내용이 잔인하다고 그림형제에게 항의하기 시작했고, 백설공주=착하고 순수한 소녀, 계모=악독한 왕비, 계모가 백설공주를 독살한 내용으로 수정했다 한다.

 

실제로 그림형제는 백설공주를 6차례에 걸쳐 수정했다 한다.

그러나 키류 미사오의 설은 백설공주의 여러가지 설 중 하나일 뿐이라 일축하고 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언비리버블 스토리:불속의 사람들

1392년 7월 17일 개성 수창궁.

역성혁명을 통해 즉위한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한다.

 

그러나, 조의생,임선미를 비롯한 고려의 선비들은 태조 이성계를 거부하고 산속으로 들어가 은둔을 시작하였다.

 

이성계는 이들을 회유하기 위해서 은신처로 차사를 보냈다.

과거시험을 실시하여 등용하려 하였으나 시험장에 나타나지 않은 고려의 은둔선비들...

벼슬자리를 주겠다고 다시 한번 차사를 보냈으나 이 또한 거절을 한다.

 

할 수 없이 직접 나선 이성계는 집에 불을 지른다.

불을 질러 선비들을 집밖으로 나오게 할 작정이었으나 이들은 이성계에게 굽히느니 죽음을 선택하겠다고 한 것이다.

 

'두문동실기', '두문록' 등에 전해지는 이야기로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않는다는 '두문불출(杜門不出)'을 대표하는 사례라 한다.

그 후 고려 선비들의 은신처를 '두문동'이라 부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