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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tv 서프라이즈 672회,도플갱어 0.5톤의 살인자 외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672회,도플갱어 0.5톤의 살인자 외

-도플갱어

도플갱어(doppelganger)는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라는 독일어에서 유래된 말이라 한다.

요한 볼프강 괴테의 자서전 '시와 진실'에서 도플갱어를 만났다는 말이나 17세기 존 던이 아내의 도플갱어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톱니바퀴'를 집필한 후 사망한 일본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책에서 도플갱어를 만나면 사망한다는 속설이 전해진 후 도플갱어는 공포의 존재나 심령현상, 조현증(정신분열증)과 같은 허구의 존재로 폄하되고 있었다.

그런데.......

 

존 제이슨/닐 리처드슨

 

닐 리처드슨과 존 제이슨은 쌍둥이가 아닌 5살 차이가 나는데 외모 뿐 아니라 살아온 인생까지도 닮아 있었다 한다.

비슷한 외모의 아내를 만나 일주일만에 청혼하여 결혼하였고, 초등학교에서 종교학을 가르친 경력까지 있었다. 

 

이 뿐만 아니다.

 

루이사/ 니암 기니

 

SNS를 통해 자신과 닮은 사람을 만난 사람들도 있다.

좋아하는 색깔, 평소 습관, 취향까지 닮아 있는 루이사 니암 기니는 SNS를 통해서 서로 닮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탈리아에 사는 루이사는 다른 나라에 사는 니암 기니을 만나기까지 했다.

니암 기니는 루이사를 만나기 이전 2013년 아일랜드의 켈렌이라는 사람을 만난 적도 있다 한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 곳곳에 존재하여 사진작가 프랑수아 브뤼넬은 도플갱어 사진을 찍어서 전시까지 했다 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유전학자는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살아온 환경까지 비슷할 경우 외모가 닮을 수 있다'며 말하고 있고, 사진 촬영각도나 조명효과로 인한 착시 효과라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가족관계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닮아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놀라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0.5톤의 살인자

마이라 로잘레스는 몸무게 500kg이 나가던 '전 세계에서 가장 뚱뚱한 여자'였다.

10대부터 갑자기 살이 찌기 시작했는데, 아버지가 파산하자 스트레스로 먹기 시작하여 이렇게 되었다 한다.

 

그런데......

조카 엘리시오를 깔아서 질식사 시켰다고 하여 마이라 로잘레스가 체포되는 일이 있었다.

 

몸무게로 조카를 질시사시킨 희대의 살인사건으로 체포하는 것부터 법정에 세우기까지 모든과정을 생중계하면서 마이라 로잘레스는 온갖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집벽을 부수고 그녀를 옮기기 위해 매트리스로 옮기는 장면, 경찰차 대신 구급차에 실리는 장면, 구치소 대신 병원에 감금하고, 법정에 세우기 위해 법정의 문짝을 떼어내는 장면까지.....

실시간으로 조롱거리로 전락 당하였다.

 

헌데, 그녀의 변호사가 마이라가 엘리시오를 죽인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일이 발생했다.

사인을 조사하던 중 부검을 하였는데, 질식사가 아니라 두개골에 가해진 외상으로 사망했다 밝혀진 것이다.

 

 

진실은 이랬다.

술에 취한 마이라의 동생이 장난감을 고쳐달라는 아들을 귀찮아하며 밀어서 넘어뜨렸는데 그만 죽고 만 것이다.

마이라는 자신이 초고도비만에 의해서 살날이 얼마 없음을 알고 삶을 좌절하고 포기하여 동생의 죄를 뒤집어 쓴 것이었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게 되자 동정론이 일어나면서 마이라를 돕기 위해서 도움의 손길을 뻗어왔고, 마이라는 360kg을 감량하는 데 성공, 수감된 여동생을 대신하여 조카들을 돌보면서 제 2의 삶을 살고 있다 한다.

 

 

-독재자의 죽음

1953년 3월 모스코바.

30년 동안 소련을 통치한 독재자 스탈린은 통치기간 동안 약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피의 대숙청을 하게 된다.

 

공포통치를 하였던 스탈린이었지만 정작 그 자신도 암살의 위협을 느끼면 살았다 한다.

그러던 중 의사들이 스탈린을 암살하기 위해서 공작을 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게 됐다.

그래서 그 편지 속의 의사들을 체포하여 악랄하게 고문하였다.

 

그런데 1956년 의사들의 음모 사건은 스탈린에 의해 날조된 것이라면서 스탈린 사후 권력을 쥐게 된 흐루시초프가 밝히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1952년 스탈린은 암살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절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희생양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스탈린의 건강을 위하던 주치의 비노그라도프의 말을 오해하여 의사를 희생양으로 결정하게 되고, 다른 의사들까지 연루시켜 없앨 음모를 지시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의사들의 음모 사건은 스탈린 본인의 생명마저 앗아가게 되는 결과를 가지게 된다.

 

어느 날 의식을 잃고 쓰러진 스탈린!

그런데 주변에 스탈린을 치료할 의사가 없었다.

 

10시간 후 뇌출혈 판정을 받았으나 의사들이 모두 경험이 없거나 실력이 부족하였던 것이다.

쓸만한 의사는 모두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

 

결국 스탈린은 의사를 없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였다. 

 

 

-단 하나뿐인 사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클라크 게이블은 다섯번 결혼을 하고 수많은 스캔들에 휩싸여 '할리우드의 대표 바람둥이'였으나 정작 단 한명의 여자를 사랑한 배우였다 한다.

 

 

클라크 게이블이 평생 사랑한 단 한명의 여자는 캐롤 롬바드였다.

'사느냐 죽느냐', '스미스부부' 등에 출연하면서 1930년대 후반, 주당 35000달러의 수입을 올리던 잘나가던 여배우였다.

 

클라크 게이블과 캐롤 롬바드의 첫 만남은 '그녀의 남자는 없어'라는 영화였다.

당시 배우자가 있었던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4년 후 파티장에서 재회하였으나 크게 싸움이 났다.

바람둥이로 알고 있던 클라크 게이블에 대해서 인상이 좋지 않았던 캐롤 롬바드는 클라크 게이블과 염문설이 나며 이를 크게 부정하면서 클라크 게이블을 면전에서 화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클라크 게입르은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캐롤 롬바드에게 하게 된다.

어릴 적 친어머니를 잃고 계모에게서 학대를 당하였던 이야기....

 

 

가난과 학대로 18살에 집을 나오게 되었고, 자신을 낳다 돌아가신 어머니로 인해서 어머니의 사랑과 행복한 가정을 갈구하는 심리로 인해서 자신에게 친절한 여성들에게 호감을 가졌으며, 14살 연상 조세핀 딜런과 첫번째 결혼하였고, 30살이 되던 해 17세 연상 마리아 랭햄과 두번째 결혼를 하였으나 사회적 지위와 돈을 이용해 클라크를 구속하려 들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오해를 풀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 두사람은 급속도로 관계가 진전된다.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캐롤 롬바드로 1939년 세번째 결혼을 하게 되는데.....

 

 

1942년 1월 결혼 3주년!

클라크 게이블의 인생을 뒤바꾸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전쟁 자금 조달을 위해 전쟁 채권을 판매한 미국 정부!

캐롤 롬바드는 채권 홍보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비행기 추락사고로 현장에서 사망하고 만다.

 

클라크 게이블은 처음으로 사랑한 여인을 잃고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7개월 후 배우 잠정활동 중단하고 공군 입대 선언하였다.

뜻밖의 이 결정은 캐롤의 흔적을 찾기 위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클라크 게이블은 사망 당시 캐롤의 머플러를 찾았다.

클라크 게이블 자신이 선물한 것이고 캐롤이 생전 가장 아끼던 것이었다.

 

실비아 애슐리

 

클라크 게이블은 전쟁이 끝난 후 영화계에 복귀하였고, 두번의 결혼식을 더하게 된다.

그렇지만 두 사람 모두 캐롤 롬바드와 닮은 사람들이었다.

 

클라크 게이블은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다.

그리고, 죽어가는 순간에도 그리워 한 캐롤 롬바드의 옆에 안치된다.

 

-언빌리버블 스토리: 그녀를 잡아라

1921년 중국 단둥.

대한민국임시정부(상하이)!

 

독립운동자금을 모으기 위해 국내 잠입을 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단둥을 거쳐야 했다.

 

정정화도 그 중의 한명!

정정화를 잡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던 일본 순사들 중에서 창씨 개명을 한 나카무라가 있었다.

나카무라는 일본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 창씨 개명을 하였고, 일본 순사로 위장한 최석순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1987년 정정화의 회고록 '녹두꽃'에 최석순의 공이 언급되어 있어 밝혀진 사실이다.

최석순은 일본 순사로 활동하면 독립운동가를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