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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tv 서프라이즈 675회,코넌 도일 금주법 오마르 보르칸 외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675회,코넌 도일 금주법 오마르 보르칸 외

-21의 저주

프랑스왕 루이 16세는 부르봉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결혼을 하고 프랑스혁명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데....

 

 

왕이 되기전부터 특이한 습관이 있었다 한다.

음식의 가짓수가 21개가 안되게 피했고, 21시가 되기 전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매달 21일은 외출을 삼갔다.

 

그 이유는 1756년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잔병치레를 자주 했던 루이 16세는 2살 때 결핵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기게 된다.

유명한 점성가를 불러 루이 16세의 운명을 점치게 되는데, 그 점성가는 루이 16세가 형과 아버지 대신 왕이 될거라 예언하였고, 숫자 21을 조심하라고 말한다.

 

그 점성가의 예언인지 우연의 일치인지 형과 아버지가 사망하고, 루이 16세는 11살에 왕위계승자가 된다.

1774년 루이 15세가 사망하게 되었으나 왕이 된 후에도 21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다.

 

희안하게도 대관식이 열리던 해 루이 16세는 21살이었다.

서둘러 대관식을 마친 후 왕립학교로 가서 학생대표의 환영사를 듣게 되는데, 듣지도 않고 서둘러 왕궁으로 돌아간다.

 

이어, 왕족들이 도박과 사치로 진 빚을 갚아 달라며 찾아온다.

하필 영주들의 숫자가 21명!

21에 대한 두려움에 반드시 빚을 갚아주겠다고 약속하게 되는데 이 일은 루이 16세의 명을 단축시키는 계기가 된다.

 

프랑스 왕실의 재정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루이 15세 때 40억 리브르(예전의 프랑스의 화폐단위)에 해당하는 국채를 남겼고, 빚을 갚기 위해 세금을 크게 올렸다.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높은 세금으로 민중들의 삶이 피폐해지자 1789년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루이 16세는 가족과 도망을 가다가 바렌느에서 체포됐다. 이날은 1971년 6월 21일이었다.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이 됐음을 선포했던 날은 1792년 9월 21일....

 

 

공개재판을 받게 된 루이16세가 사형을 받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놀랍게도 국민공회 로베스피에르란 사람으로 루이 16세의 사형 주장을 11차례나 한다.

이 사람은 17년 전 루이 16세에게 환영사를 낭독했던 사람이었다.

환영사 낭독일에 크게 상심한 이 사람은 루이 16세에게 앙심이 남아 있었던 듯 하다.

 

 

루이 16세가 처형된 단두대는 파리대학 의과대학 교수 기요탱(Joseph-Ignace Guillotin,길로틴이라는 것의 유래가 된 이름)에 의해 1790년 1월 21일 제작하였다.

단두대 사용을 허락한 사람 공교롭게도 루이 16세였다.

루이 16세는 1793년 1월 21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죽음의 비밀

1926년 미국 뉴욕시 12월 24일~26일까지 3일 동안 벨뷰 병원에서는 23명 사망하였다.

사인은 급성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쇼크사!

 

 

당시는 1920년 1월 시행된 금주법 시행으로 0.5% 이상의 알코올 생산,유통,판매,수출입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금주법이 무색하리 만큼 무허가 비밀 술집이 생겨났다.

1926년에만 3만개의 술집이 있었다 한다.

금주법 시행 전보다 오히려 더 늘어난 상태였고, 1933년 금주법 해제됐다.

 

헌데, 2010년 벨뷰 병원 사건은 술 때문이 아니라 독극물이 든 술을 마셨기 때문이라는 데보라 블럼의 주장이 있었다.

데보라 블럼은 '독살범의 안내서'라는 책을 통해서 미국 정부의 계획이었다고 발표하였다.

 

당시 미국 정부는 지켜지지 않는 금주법 때문에 고민에 빠졌는데, 술을 마시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서 술에 클로로포름을 타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한다.

 

현재 클로로포름은 휘발성이 강한 무색투명한 액체이고, 호흡곤란, 신경마비,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니 당시에만 해도 클로로포름에 대한 정확한 인체부작용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해서 밀주 제조 유통업자를 매수하여 아세톤,벤젠,에테르,니코틴 등 10여개의 독성 물질을 탄 술을 일부러 유통시켰다 한다.

 

이 술을 마신 23명의 사람이 사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피해자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벨뷰 병원 알코올 사망사건 이후에도 계속 술을 마신 사람들은 미 정부가 금주법이 해제되던 순간까지 이런 독극물 밀주를 유통시켜 13년 동안 1만여 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한다.

 

 

당시 벨뷰 병원 의료검시관 찰스 노리스는 이 사건에 의혹을 느껴 부검을 실시하였고, 체내에 클로로포름 등의 위험 물질이 남아있음을 알아챈다.

찰스 노리스는 독살을 확신했고, 뜻을 함께 한 의사들은 미 정부에 진상조사를 요구했으나 당시 금주법을 집행하던 책임자 세이모어 M. 로맨은 금주법 반대론자들의 근거없는 주장이라 반박하며 사건을 덮었다.

 

데보라 블럼의 저서는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퓰리처 상 수상하기까지 했으나, 미 정부는 현재까지 아무런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 남자의 고백

1929년 영국 서섹스주

아서 코난 도일은 1859년 영국 에든버러 출생의 세계적인 추리소설 작가로 안과 의사로 일하며 집필 시작하였다.

'네개의 서명', '바스커빌 가문의 개', '주홍색 연구'(셜록 홈즈 탄생)와 같은 작품을 통해서 풍부한 의학적 지식과 논리적이고 과학적 추리로 전 세계 독자를 열광시켰다.

 

 

헌데, 1918년부터 심령학에 빠져 들기 시작하였다.

인세로 매년 20만 파운드를 심령학회 연구비로 기부하기까지 하였는데, 1927년 '쇼스콤 관' 이후 추리소설 집필 중단하기까지 하면서 심령학 강연을 개최하기까지 했다.

 

 

코넌 도일이 심령학에 빠진 이유는....

1885년 루이즈 호킨스와 결혼을 하게 되고, 아들 킹슬리와 딸 메리를 두었는데, 1906년 루이즈 사망하고, 16살 연하 진 래키와 재혼을 하였다.

 

 

코넌 도일은 진 래키와의 슬하에 자녀 3명을 더 두게 되었는데, 전처 소생의 메리와 킹슬리를 눈엣가시로 여기게 되었다.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고 있던 코넌 도일 자신이 낳은 아이들이 재산을 독차지 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해서 남매를 모함하고 코넌 도일과의 사이를 이간질 하는데 성공하여, 둘을 집밖으로 내보냈다.

기숙사형 학교나 대학으로 보낸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코넌 도일을 움직여 금전적 지원마저 끊었다.

가난과 외로움에 힘들어 하는 삶을 살던 두 자녀....

 

1918년 킹슬리 26살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듣는다.

생계를 위해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다가 전사하게 된 것이다.

 

이에 아들을 그리워 하던 코넌 도일은 어느날 심령의식을 보게 되었다.

죽은 자와 소통하거나 유령을 불러내는 당시의 심령 의식을 본 후 죽은 아들에 대한 죄책감 심령학에 심취하게 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

2013년 4월 자나드리아 축제(국왕이 직접 주관하는 사우디 최대의 축제)에서 매우 잘 생겼다는 이유로 자나드리아 축제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강제 추방을 당한 한 남자가 있었다.

 

 

전 세계 언론을 장악한 SNS 글의 주인공은 오마르 보르칸(Omar Borkan Al Gala)!

아랍에미리트 출신으로 모델이자 배우 겸 사진작가였다.

 

 

오마르 보르칸이 자나드리아 축제 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강제 추방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당시 자나드리아 축제에 참석하였던 사람들의 목격담에 의하면 잘 생긴 외모로 여성들이 따르게 되었고, 남녀분리정책으로 남녀간의 접촉이 엄격하게 금지되어있던 차에 미풍양속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인해서 종교경찰이 오마르 보르칸을 연행하였다는 것이다.

 

또다른 이유로는 잘생긴 외모를 이용해 정치권 내부 스캔들이 났고, 이로 인해 추방됐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또다른 이유로는 페미니스트인 오마르 보르칸이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서 일하다가 추방됐다는 설이 있었다. 

 

이로 인해 유명세를 탄 오마르 보르칸은 각종 방송 매체의 인터뷰 요청을 받게 되었다.

값비싼 선물로 프로포즈를 받는가 하면 여러 설문조사에서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로 등극한 것이다.

 

헌데, 오마르 보르칸의 말에 의하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추방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사건의 진실은 이러했다.

캐나다 무명 모델이었던 오마르 보르칸은 자나드리아 축제에 참석한 것은 사실이지만 축제현장에서 자신을 알아본 여성이 사인을 요청했고, 유명인사인 줄 알았던 그에게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게 됐다.

 

 

그러나 경찰이 보안 등을 이유로 사인을 축제현장에서 떠나서 해줄 것을 정중하게 부탁했다 한다.

기분이 상했던 오마르는 자신의 사연을 과장해서 SNS에 올렸는데, 화제가 되면서 언론에 과장되게 소개됐다는 것이다.

사건의 파장이 점점 커지자 심적 부담을 느끼고 사실을 밝히게 됐다.

 

"왜곡된 정보를 믿은 건 언론과 사람들"

 

사실을 밝혔어도 오마르 보르칸의 인기는 여전하다 한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언빌리버블 스토리:행복이 올까요?

항 NMDA 수용체 뇌염은 천만명 중에 3~4명이 걸리는 희귀병이라 한다.

 

히사시와 마이는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였다.

결혼식 세 달 전 마이는 항 NMDA 수용체 뇌염 판정을 받게 된다.

기억을 잃어버린 마이는 결혼 약속은 물론 히사시에 대한 부분도 기억하지 못한다.

 

 

6년간 의식불명 상태에 있었고, 재활치료가 끝난 후 마이는 히사시와의 사진과 손편지 등을 보고는 차츰 히사시에 대한 기억을 찾게 된다.

그리고, 8년 전 예약했던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