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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tv 서프라이즈 677회,슈가레이 로빈슨 슈베르트 김점동 외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슈가레이 로빈슨 슈베르트 김점동 외

-악몽

1947년 미국.

복싱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서로 일컬어지는 슈가 레이 로빈슨(Sugar Ray Robinson)이 경기 당일 경기를 포기하려는 일이 일어났다.

 

 

슈가 레이 로빈슨은 202전 175승 109KO 6무 19패 2무효의 전적으로 '복싱계의 교과서', '가장 완벽한 복서'로 기록된 선수이다.

당시 경기를 포기하려는 이유는 꿈 때문이었다.

 

 

슈거 레이 로빈슨의 도전자는 지미 도일로 슈거 레이 로빈슨은 지미 도일이 죽는 악몽을 꿔서 경기를 포기하려 했던 것이다.

슈거 레이 로빈슨은 꿈이 너무도 생생해서 예지몽(현실에서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을 꿈으로 보는 것)으로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 매우 찜찜해 했다한다.

 

매너저에게 설득당한 슈거 레이 로빈슨은 목사에게 정화의식을 받고 링에 올랐으나 꿈에서처럼 8라운드 때 지미 도일은 슈거 레이 로빈슨의 펀치를 받고 쓰러졌고, 이후 뇌출혈로 사망하게 된다.

슈거 레이 로빈슨은 법정에까지 섰으나 과실치사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 충격에 8개월간 경기를 치르지 못하였고, 지미 도일의 어머니에게 집을 기부하고, 그 후로도 상금 일부를 전해졌다 한다. 

 

 

예지몽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750년 미국 무역상 로버트 모리스의 예지몽이다.

상선에서 대포에 맞아 죽는 꿈을 꿨던 로버트 모리스는 꿈속에서 보았던 상선을 보고 배에서 내리려 한다.

그런데, 선원의 실수로 대포가 발사되어 꿈과 동일하게 사망했다.

 

자신의 죽음을 꿈속에서 발견한 예지몽 사례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에이브러햄 링컨의 예지몽이다.

1865년 괴한에 의해 암살된 에이브러햄 링컨은 사망 몇 주 전에 꿈속에서 자신의 장례식을 목격했다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시신은 꿈과 동일한 장소에 안치되었다.

 

-마왕의 비밀

가곡의 왕 슈베르트의 '마왕'은 슈베르트의 곡이 아니었다는 진위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한다.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천재작곡가 슈베르트는 '겨울 나그네', '송어', '아베마리아' 600여편의 가곡을 써서 가곡의 왕이라 불리게 되었다.

헌데, <슈베르트 친구들의 기록>이란 책에는 '마왕'은 슈베르트의 곡이 아니었다는 진위논란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적혀 있다 한다.

 

슈베르트는 1782년 괴테의 시 '마왕'에서 영감을 받아 곡을 쓴다.

당시 무명이었던 슈베르트는 결국 가난과 질병에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슈만에 의해 슈베르트가 알려지게 되는데, 드레스덴의 프란츠 안톤 슈베르트는 '마왕'의 작곡자가 아니라고 편지를 써보낸다.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와 동명이인이었는데, 놀랍게도 당시에는 프란츠 안톤 슈베르트가 더 유명해서 슈베르트 하면 당연히 이 사람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해서 '마왕'의 작곡가에 대한 진위논란이 있었는데, 프란츠 안톤 슈베르트의 편지 때문에 진위 논란 시작된 것이다.

해서 두 사람을 불러 곡에 대한 오해를 풀고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의 곡이라 해명이 되었다.

 

슈베르트 사후 프란츠 안톤 슈베르트는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만이 기억이 되고 있다는 점은 참 묘한 일인 듯 하다.

 

-미치광이 폭파범

1940년 콘솔에디슨 전기회사를 비난하는 쪽지와 함께 폭탄 발견

 

1950년 그랜드 센트럴 역 터지기 직전의 폭탄 발견

 

1956년 미국 뉴욕 파라마운트 극장 폭탄 테러 사건

 

 

1951~1954년까지 총 12곳에서 폭탄이 발견되거나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직접 제조한 폭탄을 사용하고, 신문사와 경찰서에 편지를 보내 테러를 예고한다.

증거가 없어 수사에 난항을 겪던 경찰은 범죄학자 제임스 브뤼셀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경찰서로 보내온 편지, 사진, 전화 음성을 토대로 제임스 브뤼셀은 과체중의 50대 남자일 것이라 추론한다.

필체나 문체를 봐서 여자 형제들과 함께 지내고 있을 것이며, 이민자이거나 이민자의 아들일 것이다.

폭탄 사용으로 추정컨데 지나치게 깔끔한 성격에 편집증을 앓고 있다.

그리고, 더블 재킷에 단추를 모두 채울 것이다라고 추론을 하였다.

 

나중에 한 언론사가 어떤 내용이든 다 실어줄테니 테러를 그만 두라고 호소하자 '에디슨사의 한 공장에서 일하다 부상을 당했으나 회사로부터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한다.

이를 토대로 에디슨사의 공장 인부들의 명단 조사한 결과....

 

놀랍게도 용의자의 인적사항과 제임스 박사의 추론이 일치하였다.

조지 메트스키라는 용의자는 과체중의 53살의 남성이었고, 폴란드 출신 이민자의 아들이었으며, 미혼으로 누나 두명과 살고 있었다.

극심한 편집증 정신병 이력도 가지고 있었다.

증거물을 토대로 나이,성격,직업 등을 알아내는 수사기법인 프로파일링이 적용된 최초의 사건이었다 하낟.

 

 

-20년 전의 약속

1992년 보스니아 세르비아 내전으로 보스니아인 8천명 학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집단 학살 사건으로 기록된 이 학살 사건의 당시 피해자인 라미즈는 아버지와 동생의 유골을 찾기 위해 17년 동안 유골을 뒤지고 있다.

 

라미즈 덕분에 유골 300구가 가족의 품에 안겼다.

2015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스레브레니차에게 17년 만에 아버지 유골 일부를 찾아내어 아버지의 장례를 치뤄 드린다.

 

그는 아버지의 유골을 찾고 동생의 유골을 계속 찾고 있다.

유골 찾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 한다.

전쟁이 남긴 비극이다.

 

김점동과 그녀의 남편, 로제타 홀(중앙)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언빌리버블 스토리:기적을 만드는 여의사

김점동(박에스더)는 아버지와 환경적 영향으로 10살 때부터 영어를 익힌다.

그리고, 치료조차 받기 힘든 조선 여인들의 현실을 안타까워 한다.

 

여인의 몸으로 양의사가 되고 싶다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로제타 홀의 도움으로 남편과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된다.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교에 입학한 김점동은 남편이 폐결핵으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음에도 의사 면허를 취득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양의사가 되었다.

 

김점동은 보구여관(여성이 남자의자가 있는 병원에 들어갈 수 없었던 탓에 감리교 목사 스크랜튼에 의해 1887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한국 최초의 여성 전문 병원.)에서 매년 5000여명의 여자 환자를 돌봐왔다.  

그러나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진료한 탓에 34살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하게 된다.

22년 후인 1932년 결핵 퇴치를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게 되었다.

 

김점동과 같은 분들의 헌신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지....

요즘은 왜 이런 헌신적인 분들이 없는지 생각하게 만든다.